殺而救國

질문1
http://gall.dcinside.com/list.php?id=kbs_hansung&no=7771&page=1
질문2
http://gall.dcinside.com/list.php?id=kbs_hansung&no=10067&page=1&search_pos=-9904&k_type=1000&keyword=%EC%82%AC%EC%9E%90%EB%A8%B8%EB%A6%AC
질문3
http://gall.dcinside.com/list.php?id=kbs_hansung&no=13603&page=1



선정질문1 - 5회 대나무숲 결투씬에서 양만오는 왜 칼춤을 추었나?


원래 작가님 원고에는 상천과 서주필의 대결로만 그려져 있었지요.

사극이든 현대극이든 액션씬은 대부분 1:1 상황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액션씬을 색다르게 찍을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양만오의 액션을 동시에 진행시키자! 고 마음먹었습니다.

객관적 관찰자 지점에서 바라보는 양만오가 액션을 시작하면

1:1도 아니고 2:1도 아닌! 다른 드라마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액션의 느낌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었습니다.


연기자들과 스탭들에게 이 느낌을 한참 설명해야했지요.

- 서주필로 인해 늘어나는 계원들 피해를 막기 위해 상천이 뛰어듭니다.

- 고수들끼리의 ‘합’을 느끼는 고수 양만오 역시 본능적으로 싱크로^^합니다.

- 실제 싸우는 상천보다 관찰하는 양만오는 서주필의 액션을 순간적으로 미리 알아차리고 먼저 반응합니다.

- 상천과 서주필의 ‘합’에 응수해 펼치는 ‘양만오의 액션’이 느린 슬로우로 선행합니다.

- 양만오에게서 무술을 배운! ‘상천의 똑같은 액션’이 바로 뒤이어 실시간으로 진행됩니다.

- 서주필은 실제로 상천과 1:1로 대결하나, 시청자가 볼 때 이 싸움은 2:1이나 다름없고,

- 이미 지치고 열세에 놓인 서주필, 서주필을 찾아 숲 속을 헤매는 박상규의 교차편집으로,

- 서주필이 죽고 말 것이라는 불길한 느낌과 박상규가 뒤늦게 도착할 것 같다는 안타까운 예감을 최대한 끌어냅니다.

- 예상대로! 먼저 죽은 서주필을 박상규가 발견하고 오열할 때, 박상규 캐릭터에 대한 시청자들의 답답함과 안타까움은 더욱 커지지 않을까...


보너스 1!

원래 원고는 상천이 서주필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을 때, 박상규가 도착합니다.

박상규는 서주필에게 뛰어가고, 박상규를 향해 상천과 살주계들이 달려드는 것을 양만오가 제지하고 다같이 사라집니다.

서주필에 대한 박상규의 안타까움이 더 잘 살 수 있었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만,

서주필이 죽은 현장에서 직접 양만오를 본 박상규의 이후 감정선과 동선이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아 제가 수정했습니다. ^^ 만약 그랬다면 어땠을까요?


보너서 2!

상천은 대나무에 꽂힌 서주필이 묻는 질문에 굉장히 정중한 태도로 대답합니다.

사실 대답하기 전에 예를 표하는 모습이 살짝 보이지요. 자신과 목숨을 걸고 한 판 대결을

벌인 상대의 죽음 앞에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는 진정한 무예인의 모습! 혹시 알아차리셨습니까? ^^ 아무도 언급이 없으시길래...

여기서 급퀴즈!

조연출 송현욱PD와 저는 편집을 하다가 ‘참 예의바른 드라마!’라며 자주 웃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럴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예를 갖추고 있는 인물” 때문입니다. ^^

그들은 어떤 씬의 누구 누구일까요?




---

선정질문2 - 캐릭터와 연기자, 그리고 연출.


드라마PD로서 스스로에게 늘 던지는 질문 하나, “주인공 캐릭터들에게 ‘사랑’과 ‘가족’외에도 고민할 만한 ‘가치’ 혹은 ‘신념’ 나아가 ‘철학’이 존재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멜로’와 ‘홈’드라마라는 장르에 편중된 한국드라마시장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장르물의 시도’와도 연관됩니다.


[한성별곡-正] 연출로서 가장 큰 고민 역시 이 프로그램이 ‘방송시장에서 유통되는 문화 콘텐츠 상품’으로서 뿐 아니라, ‘2007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치, 혹은 신념, 나아가 철학에 대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되면 좋겠다는 ‘소망’이었습니다.

그것은 30대 후반에 다다른 저 자신조차도 잊고 살아가는, 희미하게만 떠올리는, 외면하고 싶은, 혼란스러워하는 삶의 방향에 대한 오랜 고민을 장편드라마 데뷔작에 주제의식으로 담고 싶은 욕심이기도 했습니다.


*관련 질문1. 제목에 ‘正’이 붙은 이유

원래 박진우 작가님 단막극 제목이 ‘한성별곡’이었습니다. 제목에 주제의식을 강하게 드러내고픈 욕심에 수정을 고민하던 중, 현재와 다름없이 삶의 목표, 가치관, 철학이 혼돈(상실?)되었을 듯싶은 그 시대 세 젊은이들이 서로에게 묻는 ‘과연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라는 기획의도를 관통하는 ‘정조’의 ‘정(正)’자를 발견(그 순간의 짜릿한 희열이란! ^^)하여 덧붙인 것입니다.


*관련 질문2. 박상규라는 캐릭터는 어떤 사극에서도 볼 수 없었던 캐릭터인데...

때문에 [한성별곡-正]의 주요 인물은 기록에 남은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그 주변에 있었을 법한, 평범한 우리들이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이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박상규 캐릭터는 그래서 그토록 ‘평범하게’ 설계됐습니다.


드라마 속 인물은 철저히 시청자들이 감정이입하는 ‘캐릭터’로서 존재해야 하며, 연기자는 스스로를 주(主)가 되게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의 뒤편에 객(客)으로서만 존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가 스타의 이미지를 선망하고 동경하게 만든다면, 시청자 스스로가 프로그램의 주(主)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객(客)으로 머무는 것이고, 그야말로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원 소스 멀티 유스’로 ‘캐릭터 상품’까지도 팔아치워야 하는 ‘이윤 극대화’라는 ‘시장 논리’와 무척 다릅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공영방송론’에서 비롯된 고민이며,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드라마가 해야 할 고민입니다.


‘주인공 캐릭터가 매력적이지 못하다’, 심지어는 ‘주인공 캐릭터가 불분명하다’는 많은 선배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박상규 캐릭터는 ‘평범하게’ 살아남았습니다. ‘재벌2세’가 아닌, ‘실장님’이 아닌, ‘평범한’ 우리들도 어느 순간 서로에게 매력을 느낍니다. 평범한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릴 때, 드라마 캐릭터는 진일보한다고 또한 믿습니다.


*관련 질문3. 박상규는 왜 ‘칼’을 뽑지 못하는가

평범한 우리는 늘 고민하고 갈등합니다. 세상을 경험할수록, 나이가 들수록 무엇이 옳은지 불분명하고 모호해집니다. 내가 혹시 소심한가? 나는 왜 일케 무능력한고야! 나는 왜 타고 나지 못했을까... 때론 우울해 말없이 조용해지기도 하고, 친구가 위로하는 농담 한 마디에 푸하하 웃기도 하고, 술기운에 고래고래 목청이 커지기도 합니다.

‘평범함’과 ‘스테레오타입’은 다릅니다!

극에서 갈등관계를 쉽고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스테레오타입’ 캐릭터를 많이 사용하지만, 일상의 평범한 우리들이야말로 ‘스테레오타입’ 캐릭터보다 훨씬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하루를 삽니다. 현실은 어떠한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하다! (누가 말했더라...^^)

‘평범하고’ ‘입체적’인 캐릭터야말로, ‘개연성’이 있고, ‘설득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은 지루하게 반복됩니다... 현실에선 누구나 자신이 느끼는 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대로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너무 많습니다. 끊임없이 발목을 잡아끄는 현실의 제약들! ‘칼을 뽑고 싶어도 뽑을 수 없는’ 이유들이 너무너무 많으니, 결국... 참을 수밖에요...

‘소망’의 제약은 ‘직장상사’일 수도, ‘핏줄’일 수도, ‘엄마’일 수도, ‘돈’일 수도, ‘인연’일 수도, ‘양심’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고민과 갈등의 과정은 누구에게나 ‘차선’을 선택하도록 강요합니다. ‘최선’이 아닌 ‘차선’을 고르고 선택하며 ‘신념’이 생겨나고, 이 과정의 반복은 ‘가치관’을 형성합니다.


개인의 ‘소망’이 조직과 사회 속에서 ‘신념’과 ‘가치관’으로 체계화되어 다시 개인의 사고를 통해 ‘철학’이 되는 것,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인물(캐릭터)’, ‘배경’, ‘사건’입니다.


*관련 질문4. 도술은 왜 늘 웃고 있나

*관련 질문5. 역사적으로 정조와 정순왕후의 관계는 적대적이지 않았나

저마다 다른 ‘신념’, ‘가치’, ‘철학’을 지닌 개인이 대립하고 부딪힐 때, ‘정치’가 발생한다고 저는 봅니다. 제도권 밖에서 ‘늑대를 잡을 땐 칼을 써야 하지’만, 제도권 안에서는 늘 ‘칼은 정치 그 한참 밑인 것’입니다.

‘정치’로 대립할 땐 속마음이 절대 표정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포커페이스^^가 필요하지요. 특히 ‘상대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로부터 원하는 것을 취하’고, ‘상대가 수그릴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줘야 하는’ 사회 생활이나 직장 생활에선 더더욱 그러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새 누구나 몸소 실천하고 있을 ‘생활 정치’입니다. ^^


*관련 질문6. 회상씬에서와 현재에서 나영아씨 연기가 다른데...

*관련 질문7. 박상규가 끝까지 칼 한 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하긴 몹시 나쁜 연출 아닌가...

1회 대본 연습부터 연기자들 모두 이나영 과거 회상씬 발성에 고개를 갸웃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현재의 캐릭터 변화를 극대화시키고 중후반부 비애감을 극대화시키려는 연출의도만을 고집했을 뿐, 연출 대신 욕(^^)을 먹는 이나영 역 김하은씨에 대해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도다...

이리 무정하게 연기자들에게 연출의 ‘캐릭터’를 강제하다보니, 그토록 오랫동안 무술 연습을 열심히 한 ‘박상규’가 연출 한 마디에 기가 죽어 불만 한 마디 토로하지 못하고, ‘임금’께서 그 중요한 장면에서 그 중요한 연기조차 마음껏 하지 못하셨다고 종방연에서 욕(^^)을 하시는 게 당연한 게야...


*종방연 질문들

케감동 종방연이었습니다. 수고하신 운영진들과 참석해 주신 한성정인들 모두 감사합니다.

종방연에서 있었던 질문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횽들을 위해 제가 정리해 봅니다.


- 엔딩씬 관모를 벗은 도승지는 ‘희망’인가 ‘현실 도피’인가?

도승지의 캐릭터는 대사하는 느낌까지도 ‘박상규’와 매우 흡사하게 설정했으며, ‘박상규식 사고’로 본다면 현실에 저항하는 방법이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므로, 궐내를 장악한 대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주류질서에 편입하지 않으려 관모를 벗은 것은 현실에 대한 저항을 의미합니다.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 곧 현실 도피일 수도 있는 ‘박상규식 사고’의 약점으로 보면 ‘현실 도피’로 보일 수 있으나, 저는 분명히 ‘희망’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 1회 대본의 ‘자객’을 ‘상천’이 연기했는데, 이후 관련 내용이 없는 것은?

‘공감’ 보다 더 적극적인 시청자 참여는 ‘추론’이라고 생각해서, 그리고 8부작이라는 제한된 분량 내에서의 속도감 있는 전개를 위해, 일부러 설명하지 않고 비워 둔 부분들이 분명히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객’이 ‘상천’인 부분은 솔직히 말씀드려서 결국 놓쳐 버린 부분입니다.

제 머릿속엔 ‘양만오 지휘 계통에 놓인 상천’과 ‘도술 지휘 계통에 놓인 상천’이 따로 존재하고, 후반부에 양만오와 도술이 대립하면서 당연히 밝혀질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박작가님과 저 모두 끝까지 그 기회를 찾지 못해 놓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 8회 타이틀에는 ‘삽입 음성’이 비어 있다. 의도가 있는가?

1회 후반작업을 하다가 조연출 송현욱PD와 사운드디자이너 서홍식씨가 타이틀 제공 자막 부분에 1회를 상징하는 ‘음성’을 집어넣자고 아이디어를 냈는데, 그 느낌이 좋아서 2회부터는 즐거운 고민거리가 하나 더 늘고 말았습니다. ^^

8회에는 박상규 음성을 꼭 넣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박상규는 자신의 신념이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캐릭터가 아니라는 이유로 제가 반대했습니다. 8회 엔딩씨퀀스에 많은 음성들이 들어가니 8회 타이틀에는 비워 두자, 어? 왜 비었지? 라고 의문을 갖고 엔딩까지 보다 보면 엔딩 타이틀 후에 혹시 빈 자리가 우리 시청자들의 몫이 아닌가? 라고 느끼게 하자, 뭐 이렇게 정리가 됐는데, 의도를 정확히 캐치해 주신 분들이 계셔서 반가웠습니다.

----


선정질문3. 꽃잎 - 연출의 영역


먼저 연출이 시청자들에게 연출의도를 설명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 고민이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연출의 의도는 시청자의 해석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창작자는 결국 세상에 보이기 위해 창작물을 내어놓습니다. 보고 즐기는 것은 시청자들의 특권입니다. 창작의 자유는 창작자에게 있지만, 해석의 자유는 오롯이 시청자에게 있습니다. 해석의 시시비비를 시청자들끼리 토론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지만, 그 해석을 놓고 창작자가 왈가왈부할 수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어떤 씬의 한 요소를 연출이 설명함으로써 그와 다르게 해석함으로써 커졌던 시청자의 감동이 반감된다면, 연출 의도가 설명되어지는 것이 과연 옳을까... 나아가 그런 시청자들을 위해 연출이 침묵해야 할 의무조차 지니는 것은 아닐까... 한성정인 여러분께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드디어! ‘꽃잎’에 대해 밝혀야 할 때가 오고야 말았군요. 방영 직후 가장 반발이 컸던 기억 때문에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질문이 가장 많았던 부분이기도 하니...ㅠㅠ


관련질문1. 1회부터 이재한의 존재를 알아차리도록 한 것은 연출의 의도인가?

이재한 소매에 그려진 꽃무늬, 꽃무늬 자개 관자 ‘표식’ 설정은 이재한이 ‘식별’되어 시청자들의 ‘주의’를 끌게 하려는 연출 의도입니다. 쟨 뭐야? 뭔가 있는 듯한데? 삼청동 비밀회합에 이어 황집사 거처에 다시 등장하는 ‘표식’, 역시 뭔가 있어! 자, 그렇다면, 마지막 반전까지 과연 시청자들이 이재한을 인식하도록 할 것인가, 허를 찌를 것인가?


‘이재한’의 존재는 ‘한성별곡-正’의 마지막 반전일 수 있습니다. ‘이재한’의 존재가 더욱 극적으로 등장하게끔, 아마 다른 연출이라도 ‘대비’의 존재가 마지막 반전인 듯 보이게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의 고민은 ‘마지막 반전을 어떻게 더욱 강화할 것인가’가 아니라, ‘마지막 반전으로 무엇을 노릴 것인가’입니다.


기획단계에서 고민한 미스터리, 혹은 스릴러 장르로서의 특성은 대본작업에서 상당부분 희석되고 말았습니다. 늘 그렇듯, 전체 이야기 구조와 개별 씬 구성에서도 연출은 선택해야 합니다. 장르를 추구할 것인가, 다른 것을 위해 희생할 것인가? ‘한성별곡-正’에서 중요한 것은 장르 이전에, 주제의식입니다, 하지만! 장르의 관습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 역시 연출 의도에서 벗어납니다. 주제의식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장르의 관습을 살릴 것!


‘한성별곡-正’ 연출로서 저는 이재한을 꼭꼭 숨겨 두었다가 마지막 허를 찔러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대신, ‘조금씩’ 인지되도록 허용하면서 ‘도대체 왜’라는 시청자들의 ‘점증적인’ ‘추론’을 의도합니다. 그 이유는 이미 밝힌 대로, ‘공감’보다 적극적인 시청자 참여가 ‘추론’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의상팀의 질문, 궐 안에서는요? 심지어 편전 회의에서도 이재한은 혼자 ‘식별’되는 관자를 착용합니다. 편집하는데 헉! 관자가 너무 크게 보이는데? ‘조금씩’ 인지되어야 하므로, 확연히 드러내려는 연출 의도가 아니므로, 루즈한 컷으로 교체! 적정선에서의 줄타기...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관련질문2. 삼청동 비밀조직 멤버들 속에 시파 신료들이
...

첫회 첫씬에서 삼청동 비밀조직 멤버들 속에 시파 신료들을 설정한 것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최종회 ‘대비’의 등장 이후 밝혀지게 될 존재를 첫회 첫씬부터 드러낸다는 것은 장르적 관습에서 위험한 선택이지만! 적정선에서의 줄타기에 성공한다면 오히려 장르적 관습에 충실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느 선까지 드러내느냐 하는 것!


이재한과 시파 신료들은 극중 역할이 다릅니다. ‘주의’를 끄는 정도의 차이를 두어야 합니다, ‘식별’되는 정도의 차이를 위해 ‘표식’을 설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날카로운 시청자들은 역시 알아차립니다. 온전한 감상을 위해 의식적으로 스포를 피하는 시청자들과 남들에게도 스포를 퍼뜨리고 싶어하는 시청자들까지, 다양한 시청자 층위 중에 어느 위치에 장르 연출의 눈높이를 맞추는가, 인터넷 다시보기의 압박, 캡쳐 짤로 토론이 이루어지는 디씨 갤의 압박! 역시 갈수록 어려워지는 문제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꽃잎’

같은 단막극 대본을 열 명의 연출에게 맡기면 열 개의 다른 드라마가 나올 것이라고 얘기들 하지요. 연출의 영역이 과연 어디까지인가... 연출마다 다른 대답이 나올 수 있는 미묘한 문제입니다.


박 작가님의 초고엔 ‘꽃잎’은 없었습니다. 대본 협의를 하며 ‘바람’을 설정한 것은 씬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연출 의도입니다. 또 고민합니다. ‘바람’이라는 청각적 효과만으로 충분한가, 혹시 시각적 효과가 더 필요하진 않을까... ‘꽃잎’이 날리면 ‘느낌’이 더 잘 살지 않을까... 궐 안에 정원이 아니고서야 아무데서나 꽃잎이 흩날릴 이유야 없지... 너무 상투적이지 않을까...


아! 상규와 나영의 첫만남이 매화나무 아래였지! 꽃이 만발했던 시절! 흘러버린 시간, 변해버린 관계, 어긋나는 감정! 매화의 꽃말! 고결함, 기품, 인내! 떨어지는 매화꽃잎! 단, 배경으로서 자연의 바람에 날리는 단순한 꽃잎이 아니라, 대사 진행에 따라 변화하는 감정, 감정의 진폭에 따라 잦아지기도 휘몰아치기도 하는 매화꽃잎!


궐 안에서 의녀가 주위의 시선 없이 포청 하급무관과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눌 시공간이 확보되기조차 현실적으로는 어렵지 않나... 어차피 발생할 리얼리티의 장애라면 더 적극적인 연출로 돌파하면 어떨까... 매화꽃잎이라면 상규와 나영이 만나는 시공간이 지극히 현실적인 시공간에서 다소 차단된, 과거와 잇닿으려는 상규 혹은 나영의 감정으로 둘러쌓인 어떤 특별한 시공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충격고백! 실내에서도 매화꽃잎을 흩날리자! ... 퍽! 음... (진짭니다 ^^;;;)

그렇다면 나영이 상규에게 쥐망초 독을 먹이는 씬에서도 매화꽃잎을 연결시킬 방법이 없을까... 앗! 병풍! 매화나무 병풍! 첫만남에서 활짝 핀 매화꽃 아래 서 있던 나영! 생기 없이 박제처럼, 화석처럼 남은 감정! 병풍 속 매화꽃잎 아래 쥐망초 독을 꺼내 드는 나영!


요새 꽃잎을 직접 날리는 팀이 어디 있냐는 CG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연기자 감정에 따라 변화하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아날로그 방식으로 직접 날리기를 고집하다 동시녹음 문제, 특수효과 기구의 문제, 연기자 감정 연결의 문제, 지연되는 촬영 시간의 문제로 급좌절... ㅠㅠ 병풍씬에서 촬영감독님과의 사인이 맞지 않은 문제로 앵글의 느낌 급좌절... ㅡ.ㅡ; 역시 그냥 넘어가지 않는 시청자들의 지적... 이상이 연출의 영역에 대해 평생 두고 잊지 못할 ‘꽃잎’ 사건의 전말입니다 ^^


보너스1. 연못가 나영의 손에 떨어지는 눈물

대본과 다른 장면이 꼭 연출 의도 때문만은 아닙니다. 연못가에서 물에 비친 자신을 보며 혼란스러워하는 이나영의 탄식 섞인 대사가 없어진 이유는, 대본 느낌처럼 물에 비친 자신을 향해서가 아니라, 객관화시켜 분리된 두 자아 사이의 허공으로 뻗은 손이 과거의 여러 손들과 겹치는 혼란스러움과 한스러움을 말없이 손등에 떨어지는 눈물로 극대화시키겠다는 연기자 김하은씨의 연출이었지요, 효과 백배였습니다^^.


보너스2. 조상궁 호위무사는 누구인가

대본상 단역에 지나지 않는 조상궁 호위무사, 한상궁 호위무사... 천년 조선을 지키려는 상궁 집단을 호위하는 무사그룹의 수장 느낌을 내면 어떨까... 나중에 급반전으로 또 한 번 써먹을 수 있는... 음... 앗! 장용영 최인우 장군! 어차피 이재한과 함께 대비전 편임이 드러나지 않나...

그러나 나중에 구성 상 화산과 한성에 동시에 등장하는 문제로 허걱... 급변경... 그저 닮은 사람으로 봐주길 빌며... 최대한 많이 가려진 컷으로 교체, 교체... 허나 역시 바로 제기되는 의문, 연출 의도가 항상 성공적이지는 않습니다 ㅠㅠ


보너스3. 월향의 뼛가루는...

대본상 무덤 앞으로 되어 있던 최종회 에필로그... 여러 번 묘지 씬을 찍어봤지만 엔딩의 아스라한 아픔을 보여줄 만한 묘지를 찾기란 쉽지 않을 터... 수목장? 그 시절에? 화장?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으니... 장소 헌팅 중에 발견한 마치 백두산 천지를 연상케 하는 느낌의 호숫가! 바람의 느낌! 묘지에 절하는 느낌보다, 마치 흩어지는 영혼처럼, 바람에 흩날리는 두 사람의 육신의 재! 시간의 재(Ashes of Time)!

소품팀의 지적... 그 옛날 분쇄한 골분은 현재처럼 바람에 날릴 만큼 곱지 않다... 월향이 유골단지 두 개를 들고 있느냐... 느낌, 느낌... 살아서 함께 하지 못한 두 사람, 죽어서라도 함께 할 수 있게 해 주는 느낌도 좋잖아요... ㅠㅠ


연출의 영역을 규정하기란... 스탭들을 막무가내로 설득해야 할 때엔, 특히 날카로운 시청자들 앞에선 더... 갈수록 어렵습니다 ^^;;;; 그럼 다음에 또, 꾸벅~